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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퍼스트 클래스 최후의 여정... “일등석이 다시 돌아올 날을 바라며”

기사입력 : 2019년 08월 30일 21시 17분
ACROFAN=류재용 | jaeyong.ryu@acrofan.com SNS
어려서 허튼 꿈이라 생각했던 소원이 하나 있었다. “출입국우대카드 들고, 인천국제공항 통해, 퍼스트클래스 타고, 미국 뉴욕을 생애 처음으로 가본다”는 그런 터무니없는 망상 같은 걸. 이후로 수십 년여 살아오니, 어떻게 그 꿈을 이루게 되는 날이 왔다. 아시아나클럽에 꼬박꼬박 쌓아온 마일리지 덕분에, 꿈이 현실이 되었다.

▲ 이번 생애에 이걸 진짜 해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본 나이는 만 21세 때였다. 육군 지원으로 훈련소를 갔는데, 제주도 전경으로 차출되는 바람에 카페리에 실려 섬에 들어간 처지. 때문에, 첫 백일휴가 때부터 군경할인 반값으로 김포공항과 제주공항을 오가는 신세가 되었다. 순전히 대한민국 덕분에. 이 때 만든 마일리지 카드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그 둘. 그 후로 20여년 간, 퍼스트클래스 마일리지 티켓을 가시권에 둘 정도로 숫자가 쌓여 있는 걸 보게 되었다.

하루 이틀에 요행히 된 게 아니라, 장장 20여년에 걸쳐 이렇게 되었다. 그리 큰 회사에서 특약 규정을 적용받고 직장생활을 한 건 아니었던 관계로, 마일리지를 그럭저럭 자기 명의로 저장할 수 있었다. 해외출장 다니며 본인 명의로 마일리지를 모을 수 있었고, 신용카드도 항공마일리지 적립이 되는 걸 주로 써 마일리지 테크를 꽤 오랜 시간 해 왔다. 그 덕분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둘 합쳐 약 70만 이상 숫자를 모을 수 있었고, 휴가 때 이코노미나 비즈니스클래스 업그레이드 용도로 알차게 써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시아나항공이 매각절차를 밟으면서, 뜬금없이 퍼스트클래스를 8월 말일까지만 운용하고 없앤다는 뉴스가 나왔다. 젊어서의 허튼 꿈을 이룰 길 하나가 사라지는 셈. 그래서, 가장 비행시간이 오래 걸리는 인천–뉴욕 노선에 일등석 왕복 일정이 비는 날을 부리나케 뒤져봤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여행가기 좋은 날은 전멸. 일등석 마일리지 자리가 대개 비행기 한 대 당 두 자리 정도다 보니 경쟁이 심했다. 그나마 8월 초에 왕복 하나 있어 거두절미하고 곧장 예약.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이 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게 올해 초에 있었던 이야기.

시간은 흘러흘러 예약한 날이 오고. 인생 첫 뉴욕 여행을 퍼스트클래스로 오가는 호사를 누려보았다. 아아,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 게다가, 버킷리스트 수식어를 늘렸던 요소였던 출입국우대카드를 작년에 획득해서, 더 흐믓한 마음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해군참모총장과 보병사단장 표창을 받은 바 있고, 재정경제부 장관 명의로 모범납세자 표창도 받은 애국시민이라 그런 게 가능했다. 어쩌다보니 지나온 인생이, 선출직이나 임명직 공무원에 뜻이 없는데 거기에 짜 맞춰지는 느낌이 없지 않은 그런 편이다.

아무튼. 역사적인 탑승일이 오고. 퍼스트클래스 전용창구를 거쳐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안내를 받아 수월하게 출입국창구를 통과했다. 출입국우대카드가 있다 보니, 나름 특혜를 받아 빨리 지나갈 수도 있었다. 에스코트 온 승무원조차 이거 들고 퍼스트클래스 타는 사람은 입사 이래 처음본다 그러니 희귀한 조건을 다 갖추고 공항에 온 듯 싶어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딱히 관작 누릴 거 없이, 이런 기쁨 느끼자고 그동안 그리도 애국한 거 아니겠는가.

▲ 비행기 안 좌석들은 그대로 둔다고 해도, 앞으로가 과연 어떨지가 가장 불안한 게 라운지.

▲ 퍼스트클래스와 비즈니스클래스 라운지의 가장 큰 차이는 ‘술’

▲ 라운지에서 멍 때리고 있다 보니, 비만돌고래(주: 에어버스 A380 한국 국내 애칭) 한 마리가 서서히 다가왔다.

시간을 누리고자 좀 일찌감치 티켓팅을 하고, 세계적으로 손꼽힌다는 우리나라 국적기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로 직행했다. 탑승시간 전까지 시간 보내는 게 목적인 공간인데,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가 PP카드로 가는 곳과는 달리 사람이 적어 고즈넉했다. 퍼스트클래스 없애게 된 이유가, 아무래도 고객이 적어서 채산성이 안 맞은 탓. 그나마 뉴욕 노선과 같은 최장거리는 좀 차는 편이라곤 하는데, 타며 보니 반 좀 넘게 채우는 정도. 그나마 한국 올 때에는 3분의 1정도만 착석한 걸 볼 수 있었다. 자연히, 라운지도 8할은 빈 게 현실. 그래도 이용하며 보니, 가장 눈에 띄는 건 가장 사랑하는 기계 ‘안마의자’. 예전처럼 술 마시는 버릇 있었다면 각종 위스키와 와인에 붙어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 더 그랬다. 탑승시간 전까지, 아슬아슬하게 안마의자에 파묻혀 지냈던 형편.

라운지에서 나와, 비행기 타러 오니... A380이 타는 사람이 많아서 이코노미는 줄이 끝이 안 보였다. 그러나 퍼스트클래스, 전용창구로 바로 직행. 비행기 들어가니 사무장님이 와서 인사까지 해주고, “호사를 누리었던 것이다” 웰컴드링크와 장미꽃 한 송이. 그리고 다음 달부터 퍼스트클래스는 사라지지만, 프리미엄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하거나 구매해 공간은 그대로 이용가능하다는 안내 등등이 줄이었다. 퍼스트클래스 식 식사와 서비스는 사라지고, 비즈니스 클래스 수준으로 맞춰지나, 좌석 자체를 철거하는 게 아니라 더 넓은 공간을 쓰고픈 이용객에서 선택의 폭을 제공한다는 취지. 듣자하니, 나중에 인수주체 정해지고 잘 마무리되면 퍼스트클래스 부활도 가능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FSC(Full Service Carrier) 간판 걸고, 없으면 허전한 게 일등석이니 말이다.

▲ 오래 살다 보니, 퍼스트클래스 타고 뉴욕을 다 가본다.

▲ 밥상이 넓다. 비행기가 흔들려도 넓직해서 그런지, 그럭저럭 밥 먹기에 적당했다.

▲ 출발편에서 정찬을 고를 수 있는데, 이번 여행의 선택은 전복삼합찜!

일등석 타는 손님답지 않게 단촐하게 탔다. 캐리어 3개에 거의 100kg까지 짐 부칠 수 있는 게 혜택이라, 무슨 보따리 장사처럼 오가도 이상할 거 없었으나 현실은 마일리지 특공. 캐리어 하나에 출장키트와 컵라면 채우고 타는 처지에 면세점은 언강생심 꿈도 안 꿨으니 가볍게 타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제 값 내고 탄 사람들과 똑같은 서비스를 누리다 왔다. 이코노미에선 주지도 않는 어메니티, 그거 준다. XL 사이즈까지 있는 잠옷, 그것도 준다. 무엇보다, 이코노미에선 반납해야 되는 그 유명한 화투장판(...), 그 담요도 기념품이다. 돈 내고 타면 왕복 1천만원이라, 그런 인심은 참 좋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릴 땐 무겁게 되는 형편. 다행히 선물 주러 면세담배 한 보루 사 광활했던 비닐 백 공간을 알차게 채울 수 있었다.

식도락 이야기 나오면, 퍼스트클래스는 평생 갈 드립의 원천이랄까. 와인과 위스키 등등 비싼 술이 한껏 공짜. 술 거의 금주한 처지라 손대진 않았으나, 이쪽에 조예 깊다면 나름 표 값 회수할 듯. 그리고 음식들도 캐비어부터 시작해 여럿 나온다. 갈 때에는 한정식 주문도 가능해 전복삼합찜으로 식사를 했는데, 미국 가선 먹지 못할 럭셔리한 음식이었다. 이러다 정작 미국 가서는 누룽지와 라면으로 연명하며 버텼는데, 이미 각오한 바라 더 처절하게 먹는 건 그득그득 챙겨 먹었다. 식사로는 저녁과 아침 정찬 외에, 간식으로 라면, 우동, 샌드위치, 과일 등이 제공되어 역시 다 한 바퀴 돌아왔다. 이 때 찍은 사진들은 몇 년은 갈 SNS 자랑꺼리.

인천 – 뉴욕 노선 비행시간은 북극항로로 오가는 게 대략 13~14시간 정도다. 공항 계류와 이동 시간이 1시간 남짓이니, 퍼스트클래스에 매여 있을 시간은 대략 15시간 정도. 20여년 모은 마일리지 덕분에 누린 호사이지만, 새삼스레 열심히 살아야 되겠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신용카드 포인트 외에, 그간 쌓은 마일리지가 거진 다 외항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처절하게 만들었던 탓. 꿈과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이코노미 클래스로 돌아가야 된다는 느낌이 스믈스믈 피어오르자... 그간 딱히 없던 성공에 대한 갈구가 생기더라. 인생에 권태로움이 느껴진다면, 참으로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퍼스트클래스를 탔었던 그 시간들이 말이다.

▲ 15시간여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내렸을 때,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비결은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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