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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흔한 체념의 노래가 그 의미를 달리 할 때... 마이클 리의 ‘헤드윅(HEDWIG)’

기사입력 : 2019년 09월 30일 21시 26분
ACROFAN=류재용 | jaeyong.ryu@acrofan.com | SNS
뮤지컬 인기가 캐스팅 따라 좌지우지된다고는 해도, 한국에서의 헤드윅(HEDWIG) 인기는 그걸 뛰어넘은 그 무언가로 회자된다. 조승우, 오만석, 김다현, 송용진 4인 캐스팅으로 1차 공연이 시작된 것이 벌써 2005년. 14년 이야기. 그 긴 세월이 지남에도, 팬들의 성원은 변심하지 않고 여전히 헤드윅 고유의 팬덤이 유지되는 중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실패한 성전환 수술 등 개인적인 불행이 하나 가득인 캐릭터에게, 분단된 나라와 낙원이라 믿고 탈출한 미국이 또 다른 지옥인 시대적 서사까지 뒤집어 씌워진, 매우 잔혹한 설정. 락앤롤로 귀를 속이고, 화려한 분장으로 눈을 속여도 그 끔찍함은 어디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는, 다는 아니어도 보는 이들에게 어딘가를 건드리는 느낌이 없지 않을 수 없다.

▲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뮤지컬 ‘헤드윅 앤 디 앵그리 인치’가 절찬 공연 중!

특별히 대중적이거나 컬트한 인기를 따로 끄는 그런 넘버가 있는 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인터미션도 없이 120분 이상 진행되는 극 가운데에서, 헤드윅의 넋두리가 꽤 길게 이어지는 형편. 콘서트 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설정을 소개하는 컨셉으로 극 서사가 이어지는 탓에, 노래와 반주가 없다면 중간중간 모노 드라마가 관객의 몰입과 이해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7명이라는 인원으로 공연시간을 채우는 중이나, 극을 이끄는 건 헤드윅과 이츠학 단 둘. 이중 이츠학은, 중간중간 노래를 매우 잘하는 역할 외에, 헤드윅 또는 그 삶의 편린이 지닌 변덕스러움에 진절머리 치고픈 관객의 마음을 대변한다. 따라서, 모든 아이러니의 중심에는 헤드윅이 홀로 서 있는 모양새다. 자칫 잘못하면 하염없이 처연해질 수 있는 조건. 때문에, 뮤지컬 헤드윅에서 헤드윅 역할을 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있어 자신의 퍼포먼스 한계를 끌어내기에 매우 욕심이 날 포지션이다.

본래 이번 시즌 12가 개막하기 전, 공연계에서 주목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아이돌로, 솔로 가수로, 기획사 임원으로, 그리 활약해 온 강타가 헤드윅 역할에 도전한다는 것. 그래서 강타의 연기를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사생활 논란이 지난 8월에 터지면서, 그가 이끌 페노메논을 볼 기회는 사라졌다. 대신이랄까, 바로 전 시즌 11과 대만 투어에서 활약했던 마이클 리가 용단을 내려 다시 참여하면서 한국에서 영어로 공연되는 헤드윅을 접해볼 수 있게 되었다.

▲ ‘헤드윅’이란 캐릭터는, 공연하는 배우의 역량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소중한 토대이자 기회.

시대는 1980~90년대, 배경은 분단된 독일에서 오일쇼크 이후 호황이 꺾이고 정신 못차리던 미국과 미국인을 다룬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지극히 옛날이야기. 한국도 못한 통일도 해냈고, 미국은 전후 최대 호황기를 누리는 때라, 초기 설정은 어긋난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이 부분을 채우는 것이 ‘콘서트’가 열리는 장소를 순회하는 듯 표현하는 것. 그리고 마치 해외 투어를 하는 듯한 어수룩한 내한공연의 느낌을 접목하는 것. 어긋난 설정은 어긋나는 게 당연한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피한 셈이랄까. 거기에 배우 개그는 덤.

이 다음은 온전히 극을 주도하는 배우, 특히 헤드윅의 역할이다. 마이클 리의 공연은 전 시즌에서부터 영어 공연이라는 대전제가 붙는 부분. 오리지널 공연에 비견해 봐도, 배우의 퍼포먼스가 훌륭히 대응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과 락앤롤 그 사이에 있는 감정 표현이 적절히 배분된 시간을 관객을 누릴 수 있다. 불쾌한 골짜기가 상당히 진한 극 자체의 설정이 전제되어 있어, 현 시점에서 여전히 차별이 만연한 성소수자들의 삶이 객석을 싸하게 하거나 또는 뜬금없이 센 반응을 이끌 포인트가 간혹 있다. 이 때의 마음가짐이, 아마도 관객 스스로 자신의 톨레랑스를 가늠할 기회이기도 하다. 마이클 리의 열연 역시, 이 부분을 계속 밀착해 자극한다.

극이 클라이막스를 지나, 과거의 처연했던 기억 역시 무언가 사그러 가는 그 즈음이 올 때. “갱년기”란 코멘트 그대로, 사람은 지속했던 것과 한 번은 다른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 짓고자 할 때가 온다. 그 순간 이츠학이 얻는 구원은, 관객들 스스로가 얻는 구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과거는 과거대로 자신이 끌어안고, 주변인들에게 자신과 같은 일을 더 이상 전이시키지 않을 때에 오는 평온함. 그저 있는 그대로로서의 평화가 마지막에 살포시 드리울 때, 헤드윅의 얼굴에 가로 새겨진 성호는 결국 인간은 어디에 귀의해 가는지를 그린다. 그리고 헤드윅의 노래조차도, 인생을 가로 질러가는 시간 속에 녹아들어간다.

▲ 사람 마음 속 벽은, 인간의 역사 그 언제나 그러했듯 누군가에 의해 세워지고 또 누군가에 의해 무너진다. 뮤지컬 헤드윅이 지닌 공감은, 그런 측면에서 날로 생명력을 더해가며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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