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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뮤지컬 베토벤; Beethoven Secret’ 월드 프리미어 초연에 대한 소고(小考)

기사입력 : 2023년 01월 29일 14시 26분
ACROFAN=류재용 | jaeyong.ryu@acrofan.com SNS
영화 중에 ‘종교영화’라는 장르가 있다. 당연하게도, 이리 제작되는 영화는 뼈대가 되는 특정 종교를 중심에 놓는다. 참으로 많은 종교와 교주, 창시자 등등이 등장하는 동양과 달리, 서구권은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십계>, <쿠오 바디스>, <벤허> 등과 같은 불멸의 블록버스터부터 일선 교회 동아리에서 신앙심으로 만든 습작들까지, 그렇게 참으로 많은 영화들이 ‘영화’라는 기술이 생긴 이래로 이제껏 꾸준히 나온다.

현재 종교영화라는 장르 대부분을 이끄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한 시대를 살다 간 ‘위인’은, 그 신격에는 이르지 않았기에 그들을 주제로 삼은 창작들은 꼭 역사에 연연하지 않고 ‘프리스타일’로 상상을 덧대는 작품들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더, 해리성 장애를 끼얹은 모차르트를 주역으로 삼은 <모차르트!>와 토요일 새벽에 재방송될법한 아침 드라마 같은 <엘리자벳>을 만든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월드 프리미어로 한국에 선사한 작품에 많은 관심과 기대가 쏠렸다. 그리고 그 초연의 결과는?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공유한 베토벤에 대한 신심(信心)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 신심으로 제작된 ‘뮤지컬 베토벤; Beethoven Secret(이하 뮤지컬 베토벤)’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가 지닌 물리적인 역량을 모두 이끌어내는 치열함을 보여준다.

■ 음악인들이 품고 있는, ‘베토벤’ 그 이름이 지닌 위상이 펼쳐지는 무대

인간 ‘베토벤’에 대해서 지식 차원에서 알 수 있는 내용들은 위키피디아와 교양 다큐멘터리를 통해 상당히 많이 정리되어 있다. 구글링만 해봐도, 그의 가정사와 연애관계 등등이 매우 복잡했음을 알기 쉽다. 그래도 당대의 사나이로 한 시대를 살다 가신 분이란 건 불문가지. 그런 와중에, 역사가들 연구에 따르면, 그의 고집과 독단적인 성품으로 말미암은 설화(舌禍)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올바른 것이었다는 해석이 종종 나타난다. 요즘 상식에 비춰 봐도, 설명이 부족하거나 방법이 거칠었을 뿐 가족이나 후원자들에게 허튼 소리 한 적은 또 없었다는 이야기. 후대에서 미화할 거 따로 없게, 이리 올곧게 살다 가기도 쉽지 않은데 그리 살다 가셨다.

이 때문에 당사자의 인생이 고난의 연속이었던 건 당연한 결과로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항목 분리와 주석 등등이 저리도 많은 건, 그만큼 사건사고도 많았고 동시에 이를 연구주제로 삼은 대학원생(!)들이 근 200년 동안 엄청나게 많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입으로 고생 사서 하는 거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흔한 일이니까, 음악은 음악대로 또 그의 인생은 인생대로, 그리 더한 친밀감과 보편성을 획득하는 건 이런 인간적인 사연들이 쌓여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뮤지컬 베토벤은 그런 복잡다난했던 그의 인생을 아주 단순화시켰다. 소위 ‘불멸의 연인’과 관련해 여러 가지 설 중에서 ‘안토니 브렌타노’ 설을 채택한 정도 외엔, 일평생 음악만 하다 가신 분처럼 그렸다. 하다못해 역사적으로 베토벤의 강권이 맞았다는 동생 ‘카스파 안톤 칼 판 베토벤’ 내외와 관련된 이야기도, 베토벤 스스로가 자신의 고집을 꺽는 장치로 소모되어서, 이쯤되면 무슨 일만 하다 가신 성인(聖人)의 일대기처럼 그려진다. 똑같은 음악인인 모차르트는 그리도 굴리고 갈아 마시더니, 베토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원작자들이 그려내고야 말았다.

약간 다른 의미로, 원작자들이 베토벤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그린 게 이해되는 감도 없지 않다. 베토벤은 1827년 3월 26일, 향년 56세의 나이로 타개했다. 오는 2027년은, 서거 200주년이 되는 셈. 여기에서 주목할 점, 독일 연방정부는 게르만 민족이 인류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해를 해당 업적 또는 해당 인물의 해로 선포한다. 아무래도 두 번의 세계대전 탓에 더 게르만 민족의 인류사적 기여를 지독하게 강조하는 나라인데, 일례로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전 세계 개신교 교단을 대상으로, 또 알게 모르게 한국에서도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몇 년 간 조용했다지만, 그래서 더 2027년은 팬데믹도 다 지나갈 것 같겠다, ‘베토벤의 해’로 선포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뮤지컬은 월드 프리미어 이후에 완벽을 더해가는 과정이 대개 3~4년 정도 걸린다. 2027년이 ‘베토벤의 해’로 선포된다는 전제에서 본다면, 영어 등 여러 언어로 전세계에 펼쳐질 시간으로는 현재 시점이 초연에는 가장 적합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뮤지컬 배우들 실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이번 한국 초연이 향후 전세계 뮤지컬 산업계에 일종의 ‘가이드’로 작용될 여건이다. 만약 예상대로 ‘베토벤의 해’가 독일 연방정부나 오스트리아 정부 공동으로 선포된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뮤지컬 베토벤이 그에게 바치는 헌정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그간 한국어가 도맡았던 초연 버전의 대미를 오스트리아 독일어 버전이 장식할 지도 모르겠다.

▲ 뮤지컬 베토벤은 프리뷰와 프레스콜을 거치면서, 그 와중에도 업데이트가 상당히 많았다. 당장 최근 프레스콜과 토요일에 관람한 공연 사이에도 변화가 느껴졌을 정도라, 국내외 초연 전체 기간 중에도 영점을 잡아가는 과정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 그동안 집대성으로 재미 봐 온 우리나라가, 이제 그 성취를 전 세계를 향해 베풀 때

우리나라 뮤지컬 팬 입장에서 봤을 때, 뮤지컬 베토벤은 그 태생에 대해 <명성황후>와 <영웅>에 가장 비견할 만 하다. 어지간하면 주역을 몰아붙이고 괴롭혀서 재미를 짜낼텐데, 베토벤은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애시당초 그럴 생각은 상상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작품이다. 그 바람에 음악인은 물론 게르만 민족의 국뽕(...)으로 보더라도 무리가 없을 베토벤에 대한 그들의 헌사와 애정이 극 중에 넘실댄다.

제작발표회 때 설명과 문답으로 어느 정도 예고된 바였지만, 한국에서의 초연은 그동안 자신들의 작품을 최적화하고 집대성한 EMK에 어떠한 미션을 넘긴 듯한 분위기가 짙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뮤지컬 산업계 전체에서 그 위치가 사실 말석에 머무르고 있어서, 해외 공연이 거의 끝물에 들어오는 게 사실이다. 거꾸로 말해, 제일 마지막에 들어오기 때문에 해외에서 돌고 돌다 가장 완성된 버전을 한국 관객들이 누린다는 얘기도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국내 뮤지컬 산업 종사자들이 포텐셜을 주구장창 터트려 온 게 어떻게 보면 ‘업보’다.

사실 한국 초연이라 공개되지 않았다지만, 뮤지컬 베토벤은 영어 원곡들이 존재한다. 현재의 한국어 가사는 어디까지나 이의 번역. 최근 프레스콜 때와 대비해도, 대화/독백/호소 등의 상황에서 곡 해석이 미묘하게 바뀐 듯한 게 들리는데, 이런 경우는 상업 뮤지컬에서 매우 드문 경우다. 소극장 뮤지컬에서 애드립으로 분기되나 싶은 그런 터치가 그 짧은 사이에도 있었단 얘기인데, 아무래도 커뮤니티와 팬덤에서 나오는 피드백들을 제작사에서 수시로 청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호불호’란 에둘러 이야기하는 표현이야 본극을 보기 전에도 아는 뮤지컬 애호가들에게 여러 차례 들었던 바이고, 그러한 부분을 감안할 때에 앞서 언급한 ‘헌정’과 당장의 상업적 성공 사이에서 EMK가 어떠한 고뇌를 만끽하고 있을지가 짐작이 간다.

그래도 뮤지컬 베토벤 이 건은 속된 말로 누군가가 총대를 매야 할 일이다. 뜬금없이 최종보스가 처음부터 나타난 셈이긴 하나, 이걸 극복한다면 전 세계 뮤지컬 창작자들이 EMK를 파트너 위시 리스트 최상단에 박아 넣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원되는 게 배우들의 팬덤인데, 거기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올 성 싶다. 여러 공연계 중에서도 특히 뮤지컬 팬들이 유독 원하는 것은 극중 배역의 잠재력을 발산하는, 자신이 애호하는 배우가 가장 아름다울 그 순간을 객석에서 함께 누리기 위함이다. 반작용으로 이에 대한 불만이 병적으로 발현되는 사건사고들도 공연계 전체에서 뮤지컬 계가 가장 많은데, 이러한 데에서 극에 배우가 무슨 동원이 되는 듯한 또는 소모되는 인상을 주는 건, 제작사 차원에서 극복해야 될 난제다. 그나마 클래식 음악이 취미 이상이라면 음악인들의 감성에 동참하겠지만, 클래식 음악이 취미 미만이라면 그러긴 어려운 극의 구조. 게다가 베토벤의 음악이 너무나 강하다 보니, 여기에 가사를 붙인 리스크도 특정한 조건 시에 나름 이슈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향곡에 팝과 락을 덧대거나 피아노 독주로 처리해 잔양을 덮어씌우고자 하는 노력이 있긴 했으나, ‘이야기’ 자체의 힘이 밸런스를 못 맞춘다는 점은 고민꺼리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엘리자벳>의 ‘루이지 루케니’ 같은 감초 배역이 꽤나 절실해 보인다.

▲ 개인적으로 참 사연이 많은 ‘옥주현’ 배우의 세계 초연이라, 1월 28일 오후 2시 공연을 관람했다.

■ 안토니 브렌타노는 막달라 마리아인가... 베토벤 외 배역들은 참으로 애달프다

사랑의 상대방을 순애로 양심으로 대하고 사회적인 무리 없이 끝난다는 게, 베토벤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으로 보면 맞다. 다만, 뮤지컬을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 배역들이 그야말로 조역다운 흐름으로 지나쳐 가는 와중에, 베토벤을 맡은 배우의 팬이 아니라면 마음이 더 그러하달까.

개인적으로 옥주현 배우는 군 복무 시절 경험이 얽혀서 특별히 팬클럽 가입 같은 건 안해도 공연 캐스팅에 있으면 최우선으로 보는 편이다. 그 옛날 1999년, 자대 받아 갔더니 TV 위에 무슨 신당 같은 게 차려져 있고 그 중앙에 떡하니 핑클 콘서트 비디오 테이프가 모셔져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핑클에서 옥주현이 제일 좋습니다”라고 했다가, 특정인을 바랬던 그 고참이 제대하면서 테이프 들고 가기 전까지 고단했던 군생활이 펼쳐졌으니, 그런 개인사가 더해져 더 애틋하게 보는 캐스팅이다. 목표는 잊어버리고 그 과정에서 고집을 부리는 게 무슨 목표인냥, 그 사람 제대해 없어질 때까지 가수 옥주현이 좋다고 했다가 스스로 화를 불러 무슨 횡액을 겪었던 것인지. 하기사 그 때는 인권이 사치재였으니까 기억으로 경험으로 흘려 보낸다. 당연히 사회에서 이런 일로 사람 치댈 일은 없는 터라, 이렇게 목숨 걸고 고집 부린 연예인은 옥주현 배우가 군 복무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배경이 있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기대하고 본극을 보러 갔는데, 어째 ‘부활’을 그린 기독교 영화에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울다 끝나는 걸 보니 막상 극 전후를 이해하고 있어도 마음 한 켠이 횡했다. 더 마음 그런 건, 이게 고증대로 인과관계가 맞다는 사실. 창작자가 거의 헌정을 목적으로 한듯이 파격적인 시도를 접고 정극 형태로 서사를 짠 것을 볼 때, 편애는 베토벤 하나에 몰려서 다른 캐릭터가 빛 보기 힘든 구조다. 베토벤 배역을 맡은 배우의 팬이라면 황홀하겠지만, 다른 배역을 맡은 배우의 팬이라면 그러기 어렵겠다. 극의 고안 자체가 지닌 한계가 있으니, 적어도 커튼콜 외적으로라도 다른 프로그램과 프로모션으로 팬덤을 보살피는 그런 계획이 있었으면 좋겠다. 공연 외적으로, 이러한 시도와 경험, 그리고 정련된 레퍼런스는 원작자들(과 외국 라이센스 취득사들)도 기뻐할 부분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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