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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뮤지컬 웃는남자’ 광기가 광기를 만날 때... 그 순간의 개심이 빚어내는 운명적 파국

기사입력 : 2022년 06월 24일 11시 15분
ACROFAN=류재용 | jaeyong.ryu@acrofan.com SNS
블루스퀘어와 예술의전당에서 초연과 재연을 접했던 ‘뮤지컬 웃는남자’가 세 번째 무대를 세종문화회관에 올렸다. 본 극은 앞서 재연까지 24만 여명의 관객 동원으로 흥행기록을 갱신한 데다, 예그린뮤지컬어워드와 한국뮤지컬어워드 등 국내 뮤지컬 산업을 대표하는 상들을 대거 휩쓸면서 작품 완성도에 대한 평가까지 우수하다. 한국에서 검증된 덕분인지, 일본 토호 주식회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제국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등 대외적인 성취도 눈부시다.

이제는 한국을 넘어, 세계무대에서도 그 가치를 점차 빛내고 있는 ‘뮤지컬 웃는남자’는 탄탄한 빅토르 위고 원작의 서사가 시공을 넘어 최근의 국내 상황, 시대정신과도 맞물리면서 여느 공화국 시민들의 정서에도 부합하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했다. 특히나 공연 무대에 올리는 극에서 비극적 결말과 강렬한 캐릭터를 선호하는 국내 뮤지컬 팬덤 특질과 동조된 연출과 넘버들은 인기를 더 끌어오르게 만든 원동력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3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웃는남자’의 캐스팅은 초특급으로 구성되어 눈길을 끈다. 작품의 주인공 '그윈플렌' 역의 박효신, 박은태, 박강현. '우르수스' 역의 민영기, 양준모, '조시아나' 역의 신영숙, 김소향, '데아' 역의 이수빈, 유소리, '데이빗경' 역의 최성원, 김승대, '페드로' 역의 이상준, ‘앤 여왕’ 역 진도희, 김영주. 이렇듯 실력이 공인된 베테랑들로 그득 채운 출연 라인업 덕분인지, 평일 낮에도 매진사례를 이어간다는 후문이다.

(제공 : EMK뮤지컬컴퍼니)

이처럼 흥행이 성공하는 장소가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점이, 참 놀라운 부분이다. 극이 올라간 세종문화회관에 대해 ‘뮤지컬 전용극장이 아니다’라는 일반적인 관념이 있는 건, 아무래도 신인이나 연습부족인 경우 그 넓은 무대를 감당하지 못하는 탓이 크다. 잠실종합운동장과 세종문화회관, 이 둘이 지어진 시대는 물론이고 여전히 체육계와 예술계를 각각 대표하는 이유라면 ‘여기를 다 채워야 진짜’라는 실력 검증이라는 무슨 멀티버스가 겹쳐져 있는 탓이랄까.

세종문화회관에서 찬사를 받는 매우 잘 만들어진 공연은, 매우 뛰어난 경기내용을 보여준 A 매치에 비견할만하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축구 경기 내용이 미흡하다면, 그 어느 때보다 관중과 선수를 나눈 육상트랙이 멀어보인다. 반대로 무슨 ‘대첩’ 소리 듣는 경기는 트랙이고 뭐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직 선수들만이, 골만이 보일 뿐. 마찬가지로,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은 내용이 알차다면 오케스트라 자리도, 스테이지의 심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스테이지의 심도 측면은, 무대 연출 측면에서 초연과 재연과도 비교되는 부분이 된다. 일반적인 뮤지컬 공연에 대비해 좌우 폭은 물론이고 앞뒤로도 깊다. 다양한 공연을 두루 수용해야 되는, 그것도 빅사이즈를 담을 수 있는 틀로 설계된 세종문화회관이기에 이걸 다 채우자면 다른데에서 돌던 걸 그대로 올릴 수 없는 건 물어보나 마나한 일일 것이다. 또 하나의 난점이라면, 대공연장 답게 리뉴얼 시기가 하염없이 뒤로 물려서 쓸 수 있는 솔루션이 제약이 크다는 난점도 있다. 지금 기준으로는 꽤 고전적인 조명과 포인터로 무대를 채워야 해 연출 및 노동 난이도도 상당한 공연장이다. 때문에, 이를 제대로 활용하자면 연출 자체의 리뉴얼이 불가피하다. 이런 배경을 감안했을 때, 가시덤불로 관중의 시야를 가이드하고, 레이어로 심도를 연출요소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영악해 보일 정도다. 특히 ‘물’과 맞물렸을 때의 무대 활용은 세종문화회관에 올라온 뮤지컬들 중에서도 으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공 : EMK뮤지컬컴퍼니)

마침 현장을 찾은 22일 수요일 낮공연은 그윈플렌 박강현, 우르수스 양준모, 조시아나 신영숙, 데아 유소리, 데이빗 김승대, 페드로 이상준, 앤여왕 김영주 캐스팅이었다. 모두 팬덤을 이끌고 있는 뮤지컬계 스타. 낮공연 특유의 풀 컨디션 덕분에 연기와 넘버 가창 모두 매끄럽게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가창 외에도 연극적 모션까지 극에 대한 집중력이 매우 요구되는 ‘뮤지컬 웃는남자’는 로테이션을 감안하더라도 야간보다는 낮공연이 더 낫다는 느낌이 드는 게 주요 캐릭터에 독창과 독백 등 극중 장치가 상당한 피로도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배우의 컨디션이 좋다면, 넘치는 피지컬로 애드립에 나서는 명장면을 볼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스쳐 지나간다.

‘뮤지컬 웃는남자’는 그 넘버 흐름에 관해 ‘송 쓰루’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한국 관객 취향 드러나는 강렬한 독창무대가 주요 캐릭터별로 배치된다. 아무래도 자연스레 보는 사람이나 부르는 사람이나 꽤나 체력전이 된다. 이 때문에 공연자가 컨디션 관리하는 것이 무슨 야구선수들 루틴 관리하는 것 비슷한 게 언제나 깔려 있다. 스테이지 외적으로 보면 관객과 마찬가지로 공연 스탭 입장에서도 컨디션 관리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덕분인지 공연이 매끄럽게 흘러갔다. 덕분에 아무래도 더한 감동을 얻을 수 있었달까.

새삼스레 이 부분이 떠오르는 건, 마침 직접 본 회차가 초연과 재연 대비해 무대에 오른 이들 모두가 힘이 부족한 순간 자체가 한 번도 안 보인 덕분이다. 그래서일까, 그윈플렌이 상원에서 독창할 때에, 어둠 속에서 페드로가 지었던 그 표정처럼 흐믓한 마음으로 다른 관객들과 더불어 모든 극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비록 이 이야기의 끝이 파국으로 달려가는 과정이라 해도, 캐릭터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개심의 과정은 결국, 지금 그걸 지켜보는 이들의 상식과 같음이니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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