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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뮤지컬 엘리자벳’ 가장 순정만화와 같은 순간들... 이지혜, 졔엘리가 해냈다

기사입력 : 2022년 09월 12일 20시 27분
ACROFAN=류재용 | jaeyong.ryu@acrofan.com SNS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이한 ‘엘리자벳’을 지난 3일 낮공연으로 관람하였다. [9월 3일 오후 2시 : 엘리자벳 이지혜, 죽음 김준수, 루이지 루케니 강태을, 프란츠 요제프 민영기, 대공비 소피 주아, 황태자 루돌프 진태화] 앞서 2018년 4연 당시 옥주현/김소현 캐스팅으로 관람해본 기억이 있었던 덕분에, 새롭게 합류한 이지혜 캐스팅과 5연 극 연출은 여러모로 비교해 볼 수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낮공연 시간에, 개막 이전부터 설왕설래했던 이지혜 캐스팅이 나온 것을 보고 공연 초기에 살펴보고 적절한 시일이 지난 후에 다시 되짚어 맞춰 보는 게 맞다는 생각이 좀 들어 이제야 타이핑을 해 보았다.

캐스팅 외적인 부분에서 의외로 과거 기억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5연차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같은 블루스퀘어이긴 한데, 앞서보다 더 무대가 동적으로 활용된 인상이다. 이렇게까지 무대설비가 바쁘게 돌아가는 건 다른 공연에서도 본적 없다 싶을 정도로. 이번 5연이 앞서 4연과 비교되는 부분은 넘버와 연기를 제외하고 봐도, 무대가 반 템포는 더 빨리 움직인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블루스퀘어에서 이게 되는 거였나 싶을 정도로 레거시 타입 무대장치의 극한을 보여준다는 게 은근히 볼꺼리다.

일본 망가 원작 뮤지컬들이 커튼, 레이어 등을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로 대체해 연출하는 걸 꽤나 고도화하는 중이기도 하고,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등지에서는 캣츠나 라이언킹, 그리고 이번 엘리자벳의 2막 도입기처럼 객석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운용을 펼치는 등 공간 자체를 무대화하는 방식이 극마다 고유의 특질처럼 자리매김 되는 건 뮤지컬 팬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확실히 아직 덜 개화되었다 해도 할 말 없는 여건인 건 사실이다. 뮤지컬 전용극장도 몇 있고, 신설 극장들이 중소규모 뮤지컬 세팅을 감안해 설계되긴 하지만서도, 여전히 범용 활용을 목적하는 정도다. 팬들 기대만큼 투자가 적극적으로 일어나진 않고 있달까. 현실적인 조크로, 뮤지컬에 진심인 재벌이 아직 나오지 않아 현재 투자되는 게 저렇다는 말이 오가는 게 농담으로 안들리는 형편이고 그렇다.

이처럼 어느 정도 한계를 인지하고 우리나라 공연장에 들어서는 일상이긴 한데, 배우 외적인 측면에서 블루스퀘어가 풀가동된다는 게 보이는 그런 공연을 5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대 중앙 동심원을 기준으로, 전/후 그리고 사이드에서 사람만 연기하는 것이 아닌 면모가 곧잘 보인다. 그야말로, 관객 눈에 보이지 않는 스탭들까지 혼신의 중노동이 작렬되는, 참으로 열심이다 싶은 무대랄까. 덕분에, 4연 시절 기억보다 더 입체적이고 속도감 있는 씬들이 인터미션까지, 또 종막까지 쉼 없이 내달린다. (옛 기억이 있는 사람에겐, 여기서 이게 되는 거였구나 싶을 정도로)

▲ 개막 이전 캐스팅 논란으로 다소 흥이 빠질 수 있었던 5연이었으나... 출연진 모두 실력이 진짜라 이제 옛 일은 추억 그 너머로...

개막 이전에 공시된 일정으로 이지혜 캐스팅 첫 공연은 8월 31일 수요일 낮공연이었다. 개인적 기준에서 보면 그 때 봤어야 했지만, 일정 상의 문제로 세 번째 실공연 때에 처음으로 목도할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좀 당황했었는데, 외줄을 타는 어린 시씨를 연기하면서 허리 굽혔을 때 다소 숨이 흔들리는 게 들렸던 정도. 이는 이후에는 없었다 하니, 아무래도 영화 상영과 달리 다회차 공연을 보는 관객 입장에서 해프닝 정도로 회고할 수 있겠다.

사실 중요한 발견은 이 다음부터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엘리자벳은 실존인물과 역사에 근거해 여러 연출을 곁들인 캐릭터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한 고부 간의 갈등에서 부터 시작해, 제국의 황혼기와 개인적인 불행들이 켜켜히 얹어진 인물이라 여러모로 역사책을 정사로 봐도 (자기 집안 일 아니라면) 매력적인 이야기다. 한류 드라마에서 구구절절하게 애용되는 그런 스토리라인과 플롯이 유럽 오스트리아에서도 이렇게 잘 즐기고 있었구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이야기인데, 그러다보니 여성 캐릭터가 순진무구한 건 결혼 직전까지로, 이후로는 무척이나 ‘강캐(주: 강한 캐릭터)’로 그려지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봤을 때, 직접 본 4연이나 과거 3연 이전은 영상 기록물로 본 기억을 집합해 추론하자면 한국에서의 엘리자벳은 ‘강캐’ 경진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는 뮤지컬의 덕목이긴 하지만서도, 이렇게 연기의 흐름 자체가 고정화되어 버리면 극 자체의 프로모션이 한계를 절감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이런 캐릭터라인에 어느 정도 변화를 줄 동인이 존재하겠고, 그런 차원에서 이지혜 배우가 캐스팅된 것이 아닌가 그리 추정해 본다. 제목에서처럼, 공연에서 친숙한 아침드라마라기 보단 캐주얼한 순정만화를 보는 듯한 그러한 감정선을 느끼게 해준 연기는 그가 처음이다.

기존 캐스팅과 어느 부분이 다르냐면, 감정선이 여러모로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여름밤 에어컨 전기요금 아낄 궁리로 창문 열고 누웠을 적에 들리는 이웃집 부부싸움 소리... 그런 감정선은 이지혜 캐스팅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결혼 이전 순진했던 신혼부부가 자식들 먼저 보내고 다 늙어서 화해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엘리자벳의 ‘에스컬레이드’가 가장 넓은 스펙트럼으로 움직인다. 대공비 소피의 성병 장난질 이후로 계속 강-극강-초강 순으로 감정선이 가는 게 초연 이래로 역사라곤 하지만, 이지혜 캐스팅의 특징이라면 그 와중에도 넘버와 씬 별로 더 감정 고양이 달리 세분화되어 느껴진다. 시종일관 남편 프란츠 요제프를 잡아 죽이기만 하는 그 분위기에 어느 정도 관객이 연민과 분노를 동시에 공감할 접점을 더 만들어 넣었달까?

▲ 연출자 로버트 요한슨이 “엘리자벳은 가장 어려운 역할 중 하나다. 여러분들은 뮤지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연기를 목격했다”고 감탄한 게 이해가 간다.

‘1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홍보하는 와중에, 차기 6연부터는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고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5연 자체가, 자동차로 치면 ‘페이스 리프트’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앞서 연차와는 사뭇 다른 경향과 변화를 보여준 형편이다. 여기서 더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런 측면에서 이지혜 캐스팅 공연은 어느 정도 힌트를 준다고 볼 수 있겠다.

해외 가서 뮤지컬 찾아 다니며 봤다면 다들 공감하는 바이지만, 해외에서는 뮤지컬 배우가 피지컬적으로 벌크업 된 게 씬을 뭉개는 경우가 곧잘 있다. 이게 뮤지컬이 다른 공연들보다 더한 체력전이자 팀전이라 더 그런 것 같은데, 반면 한국은 배우들이 라이트한 피지컬임에도 풀타임 다 버티고 그 와중에 득음까지 해댄다. 원어로, 스튜디오 앨범으로 듣던 걸 현장에서 진짜로 해내는 걸 감상하는 게 해외 뮤지컬의 포인트라면, 한국에서의 뮤지컬 관람은 연기하는 배우의 재발견이나 잠재력 개화의 순간을 목도하는 장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한국 뮤지컬 배우들은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등등이 모두 톱 클래스인데,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고인물’처럼 된 공연을 리뉴얼한다는 건 여러모로 더한 자극이나 다수의 매력포인트를 부가하는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런지, 아마도 이번 연차 ‘엘리자벳’이 이지혜 캐스팅을 선택한 것이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가이드’가 아닐까 싶다. 하나 더 바란다면, 혁신적인 무대설비와 연출이 더해졌으면 하는 정도. 지금 10주년 기념공연이 우리나라 뮤지컬 인프라에서는 거의 극한을 보여주는 중이라, 새로운 공연장이나 기술 혁신을 통한 리빌딩이 장차 생겼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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