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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작가의 누리마실] 동짓날 하룻밤 폭풍우가 지나가자... 전주는 설국이 되었다

기사입력 : 2022년 12월 31일 18시 41분
ACROFAN=류재용 | press@acrofan.com SNS
전주는 ‘전라도’라는 단어의 앞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다. 풍남문 현판이 괜히 ‘호남제일성’이 아니랄까. 조선시대 500여년 동안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로 찬란한 역사를 썼었으나, 산업화 이후에는 도시 곳곳에 흩어진 사적지로나마 과거의 명성을 되짚어 따라가볼 따름이다.

그래도 전주여행은 언제나 설레는 맛이 있다. 남도 음식을 접하는 관문으로, 일찍이 여행객들의 호평을 켜켜히 쌓아온 도시이면서, 최근에는 영화와 같은 콘텐츠로도 도시 부흥을 산업차원에서 펼치는 등 여러모로 눈에 들어오는 소식들을 탄생시키는 역동성을 자랑하고 있다. 조선시대 건축물들, 한옥마을 구경 만이 이제는 다가 아닌 셈. 그래서 기대가 컸던 오랜만의 방문이었으나, 하늘이 너무 오랜만에 봤다는 건지 변덕이 장난이 아니었다.

사실, 방문했던 동짓날 전후로 호남과 제주 전역에 폭설주의보와 경보가 걸리면서 도착한 날은 꼼짝없이 건물 안에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저녁에는 가맥 아닌가 했으나, 보이는 건 그 유명한 블리자드. 호텔 앞 편의점도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판국에 어디가고 저기가고 그런 계획은 다 물거품이 되어 사그러져 갔다.

▲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여기저기 갈 생각으로 온 전주는 눈에 푹 파묻혀 걸어 다니며 구경하기만 좋아졌다.

건물에서 건물로 뜀뛰기를 하며 다닌 동짓밤이 그리 지나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하루 앞둔 날에는 간간히 눈발이 휘날리는 것 외에는 밤에와 같이 눈폭풍이 불지는 않았다. 단지, 밤새 20cm? 꽤 쌓인 눈은 도로를 마비시켰고, 사람이나 차나 낙상할까 미끄러질까 걱정으로 설설 기어다니는 판국이었다. 때문에, 어디 멀리 나가자는 계획은 저 멀리 날아갔다.

장거리 이동이 막히자, 근처에서 먹부림할 건 흘러넘쳤지만 소화 겸으로라도 돌아다닐 곳 찾는 게 살짝 고민이 되었다. 다행인 점은, 지역재생사업들이 못오던 새에 꽤 진척을 보여 원도심에도 돌아다니며 구경할 곳이 꽤 활성화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전통적인 구경코스인 전라감영이나 경기전이 겨울 눈 덮힌 풍경을 자랑해 지나치면서도 나름 들러볼만 했던 건 덤.

▲ 초원제약 제조공장이었던 폐건물을 수선해 연 ‘전주현대미술관’은 지역미술인들의 거점으로 전시회가 끊이지 않는다.

전주 도심지 도보여행이 대체로 한옥마을로 동선이 쏠려 있는 편이다. 물론, 그 곳 외에도 도보로 도시를 구경다닐 거점이 여럿 된다. 특히 미술관과 박물관을 거점으로 삼기에 좋은 편인데, 마침 전시기획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어서 한숨 돌릴 겸 온기 느낄 겸 들리기에 좋았다.

호남 지역 미술인들이 그린 그림들을 모아 연간기획전을 하는 도중이어서, 다양한 화풍과 개성 있는 작품들을 둘러보며 숨 고르기 편했다. 대리석에 조명을 연결해 바닥에 반사되게 만드는 조형 미술품이 불 들어오기 전에는 무슨 앉을 장소였는가 싶었지만, 직원 분이 관람객 왔다며 전원을 연결하니 갑자기 미술관 분위기가 더 났던 건 살짝 민망했던 기억.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아직 무식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둥근숲’은 지역활성화 차원에서 시작되었던 정책사업들을 수행했던 공간으로, 최근에는 행사공간과 사회적기업 공유오피스 공간으로 활약 중이다.

전주현대미술관 대각선 맞은편에는 눈에 띄는 간판 하나 없는 건물이 하나 서 있다. 공원에서도 길가에서도 입구가 이어져 있어서 무슨 문화공간인가 싶었는데, 그 쪽보다는 ‘둥근숲’이라는 이름을 지닌 사회적기업의 산실과 같은 곳이었다.

수도권으로 젊은 인구가 대부분 이동해 간 1960년대 이후, 전주는 도심지 공동화 현상을 제대로 당해본 도시였다. 농사 짓기엔 농토가 멀고, 공장을 짓기엔 중경공업 투자가 딱히 없어 전주 원도심은 과거 젊은이들이 먹고 살 길 찾기 참 어려웠던 게 당연했었다. 그나마 문화, 콘텐츠, IT 등 꼭 서울 아니어도 되는 아이템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활용하는 사업 활동이 태동해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골목 활성화와 같이 지자체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다년 간 추진해 온 사업도 있고, 영화와 게임 처럼 진흥원 차원에서 육성된 것도 있고. 여러 측면에서 원도심도 서울 못지 않게 사업할 수 있는 곳으로 키우려는 노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진행 중이다. ‘둥근숲’은 이러한 노력 초창기에 활동가들이 사무실로 또는 강연장으로 활용하고자 만든 공간에 근간을 두고, 여전히 전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여러 활동들에 기여하는 중이다.

▲ ‘다가여행자도서관’은 전주 원도심을 도보여행으로 오가다 피곤해지면 꼭 들러볼만한 휴식공간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여행서적들을 한 자리에 모은 덕분에 이름값 제대로다.

한옥마을과 같은 관광지구에서 압축적으로 전주라는 도시를 접해보는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 사는데에는 더 깊히 들어갈 수 있다. 해외여행과 달리, 말도 통하고 카드도 통하고 로밍 안해도 전화기 빵빵 터지는 그런 여느 삶의 연장과도 같은 공간이니 더. 그래서, 전주에서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여러 편의시설은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복지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다가여행자도서관’은 처음 보기에는 외지 여행객을 위한 안내소 처럼 오해하기 좋다. 그러나 들어가 보면, 여기가 ‘여행’이라는 테마로 꾸며진 도서관이자 독서실임을 금새 눈치챌 수 있다. 딱히 입장 제한이 있는 곳이 아니기에, 시민과 관광객 모두 여행이라는 테마로 책을 읽고 사색할 수 있는 그런 편의성이 돋보이는 공간 구성이다.

1층에서는 전주 여행길에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 있는 베테랑 해설사가 상시 체류 중이다. 또한 ‘여행’ 테마로 수집된 대부분의 서적들이 서가에서 제한없이 읽어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대여는 안된다지만, 현장에서 휘리릭 속독하고 갈 길 떠날 채비를 하기에는 적당한 정도. 좀 쉬었다 가고 싶다면 2층으로 올라가면 독서실 처럼 꾸며진 책상과 몇 명 앉아 푹 쉴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길가 내려다보며 노트북으로 웹서핑할 수 있는 공간도 지친 여행객의 노곤함을 달래주기엔 안성맞춤이다.

▲ 전주는 옛 건축물들의 정취로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곳이다. 간간히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또 다음 번 방문을 벌써부터 기대하게 만든다.

참으로, 전주의 밤은 낮과는 다른 생동감이 존재한다. 생활 속 음주문화의 대명사인 ‘가맥’이야 당연한 것이겠고, 최근에는 라이브 밴드들의 공연이 ‘위드 코로나’ 분위기 속에서 착실히 재개되는 움직임이다. 과도한 음주야 지양해야 하겠지만, 술을 매개로 친구를 또 음악을 접해보는 것도 전주의 밤을 즐기는 또 다른 접근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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