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홀리데이’는 그런 측면에 기댄 서사를 깔고 간다. 초혼을 앞둔 예비신부가 오래 떨어진 친구들을 모으는데 일종의 오해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 오래 알았던 사이에서나 가능한 느글느글함을 공유하는 ‘오랫동안 알았던 사이’라는 거 자체가 사실 오해였다는 모순이 각각과 각자의 인과율을 지배한다. 결말로 갈수록 모든 걸 해피엔딩으로 풀어나가 딱히 악마도 천사도 없는 좋은 게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 한 갈피를, 마돈나 노랫가락으로 풀어가는 게 뮤지컬 ‘홀리데이’의 스토리텔링이다.
꽤나 정형화된 패턴과 솔루션이 산재되어 있어서, 구성이나 접근 자체가 파격적이거나 무리한 건 없어 보인다. 단지, 이번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DIMF) 개막작으로 앞장서려다 보니 두 가지 측면에서 ‘월드 프리미어’란 타이틀을 달게 되었는데, 앞으로 한국에서 딱 영점을 잡는 게 미션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콘서트 같은 걸 기대하며 왔던 관객들에게 꽤나 호오비 탈 그런 부분으로 부각될 듯 싶다.
▲ 과거 동아시아 지역 뮤지컬 IP 견본시 역할까지 흡수하던 DIMF의 성공방정식을 다시 한 번 풀어볼 시험대가 된 ‘홀리데이’. 때문에, 지난 21일은 스탭들에게 유독 생각이 많았을 밤이었을 듯 싶다. |
본래 ‘홀리데이’는 프랑스 소극장 뮤지컬로, 프랑스 현지인들의 로컬 스타일이 강한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소극장 연극 무대 정도의 사이즈 내에서, 배우들의 피지컬과 실력으로 마치 연극처럼 어필하는 형태로 고안된 작품. 때문에, DIMF 월드 프리미어는 ‘영어’ 버전이라는 점과 중극장 이상 사이즈로의 ‘업스케일’이란 점에서 점한 타이틀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큰 변화가, 현지에서 검증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초연 형태로 일단 선보여진 것이기에 완성도 측면에서는 여러모로 설왕설래할 부분이 발생한다. 게다가 오는 2025년 한국어 초연도 제작 중이다 보니, 이런 논의들은 궁극적으로 본극을 육성하는 밑거름이 될 터. 그런 측면을 감안해 본 리뷰도 그렇고, 보는 관점이 그리 가는 형편이다.
처음 ‘홀리데이’ 개막작 선정이 알려진 뒤로, 한국 관객들은 아마도 마돈나의 유명한 곡들을 무슨 갈라 콘서트처럼 주구장창 듣길 원했을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극은 연극 정극에 가까울 정도로 대사(=영어)가 많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여섯 명이 각각의 뒷배경을 깔고 있는데, 이를 정직하게 다 풀어내고 있다. 노래 가사도 어느 정도 상호연관을 갖게 다듬어졌고, 또 당연히 배우가 맡는 대사 분량이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는 배우들을 스톱모션으로 멈추고 30초 짜리 나레이션 영상 하나로 처리할 걸 몇 분 넘게 배우들 간의 대화로 풀어간다. 연출이나 씬 배열의 영역이긴 하겠지만, 여성 4인조의 과거나 넷이 흩어진 계기 같은 걸 심플하게 액자형 장치 정도로 앞당겨 쓰고 풀었으면 어떨까 하는 그런 느낌도 다소 있다. 물론 현재 씬(Scean)으로 나열되는 흐름이 마치 모듈처럼 기능하는 걸 보면 2연 버전, 3연 버전 식으로 업그레이드를 목적하고 있음이 보인다. 단지, 러프 스케치는 드레스 리허설로 딱 끝내는 게 관객들이 보기에 좀 더 좋은 그림이 아니었나 싶다.
스케일을 확 키운 무대를 다 채우지 못했다는 점도 향후 숙제가 되겠다. 제대로 무대가 채워진다는 느낌은 4인조에 대비해 앙상블 4인이 미러링 연기를 할 때가 최초. 그 이전에는 무대의 절반 가까이가 허전한 형편. 앞뒤가 짧았다면 좀 나았을 거 같은데, 심도 측면에서 연기가 멀게 느껴지는 감도 있다. 물론 이건 DIMF 해외초청작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정교한 기계장치들로 무대를 환상적으로 못 꾸민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어서긴 하다. 원 버전 대비해 방한예산 문제로 앙상블도 다 오지못한 상황인데, 국제특송으로 무대 크기에 맞춰 특별제작된 새 무대장치까지 오는 건 무리한 일. 그렇게 국내에서 원작에 기초해 제작한 세트로 하긴 하는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비해 스크린이 작게 쪼개진 편이어서 무대 세트가 극의 장치로 기여하는 비중이 낮게 보이는 형편이 되었다. 그러며 한국 관객들이 선호하는 밀도와 강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발생한 형편이라, 향후 한국어 버전에서는 무대장치를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특화 설계해 흥행성공을 최우선시 하는 게 맞다고 판단된다.
▲ 4인조가 마돈나 팬들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한 사이란 점을 부각시키다보니 유명하지 않은 곡들까지 끌어다 쓴 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부분. 그리고, 장 폴 역 줄리앙 바티스트는 발성이 필 콜린스 스타일이고, 리차드 역 알렉상드르 블린은 발성이 로비 윌리암스 스타일이라, 그 부분을 감안해 창작곡 넘버 둘이 설계된 듯 싶은데. 이렇게 되면 한국어 버전 초연배우가 누구냐가 꽤 중요해진다. |
▲ 마돈나 노래로 만든 뮤지컬이라고 하니까, 마지막 넘버는 무조건 ‘Like a Prayer’일 것이다 싶었다. 그런데 진짜 그래서 신기했던 ‘홀리데이’. 팝송 듣는 세상사람들 생각은 어디나 좀 비슷비슷한 듯 싶다. 그렇게 앞으로도 맞춰가며 한국어 버전이 완벽해질 것을 기대한다. |
한국에서 인기몰이를 한 프랑스 뮤지컬들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다. 송 쓰루 또는 그에 준하는 ‘넘버’의 향연, 어슬레틱 또는 아크로바틱으로 상징되는 ‘피지컬’, 마지막으로 ‘앙상블’의 스케일과 퀄리티겠다. 아마도 ‘홀리데이’가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러한 요소들을 심상 차원에서는 충족시킨 작품으로 보인 덕분인데,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육성형 뮤지컬인가 싶을 정도로, 글로벌 버전은 한국어 버전을 준비하는 업계인들에게 꽤나 많은 숙제를 안길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측면에서 살을 덧대고 겉옷을 수선할 그런 측면이 산재해 있어서 특히나 더. 잘만 한다면, 글로벌 버전의 원형으로 한국어 버전이 자리를 꽤찰 공산도 있겠다 싶다.
한국어 버전으로 재설계하게 된다면, 씬의 재배치와 축약과 연계 등등이 한국인 연출가의 안목으로 다듬어짐이 필연으로 보인다. 국내 흥행작들도 보면 2연, 3연 순으로 가면 갈수록 무언가 다른 걸로 변해 가는데, 이는 팬덤의 기호 변화에 발맞춘 나름의 진화로 볼 수 있다. 지금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관객들의 기호는 변화하는 형편. 그래도 깜짝 놀랄 정도로 호평할 수 있는 부분으로 ‘앙상블’이 있으니, 이는 본작에 있는 걸 120% 이끌어낸다면 대성공이 아닐까 싶다. ‘홀리데이’는 보다보면 4인조 이야기 보다는, 앙상블이 나와서 무대를 뒤흔들어주는 게 더 보고싶어지는 생각이 점점 커지는데, 이를 감안해 장차 어찌 잘 활용하는가가 공연 중 관객 호응을 이끄는데 주요한 장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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