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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2018] 컬럼 -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선택할 수 없는 누군가의 희생

기사입력 : 2018년 10월 08일 22시 41분
ACROFAN=권용만 | yongman.kwon@acrofan.com | SNS
개인적으로 입사 이후 지금까지 해외 출장을 얼마나 다녔나 생각해 보면, 몇 달짜리 장기 일정이란 건 없었지만 짧은 일정만으로도 대략 1년 중 한달에서 한달 반 정도는 집을 떠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는 입사 이후 처음 만들었던 10년짜리 여권이 유효기간 6개월 이하로 접어들어 새로운 여권에 자리를 넘겨 주고 그 역할을 다했다. 지금 이 여권에서 몇 페이지를 썼나 세어보니, 대충 20페이지 이상은 쓴 것 같다. 새삼 폐기처리된 여권을 다시 펴 보면, 이제는 몇 년 전 간 것 같은 출입국 기록은 왜 갔었는지 바로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출장을 가는 데 있어 ‘데이터 로밍’은 단지 개인적인 메신저와 SNS 정도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선택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메일을 받고 연락하고 하는 데 있어서도 데이터 로밍이란 참으로 유용한 수단이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보조적 수단이었다. 덕분에 언젠가부터는 이 데이터 로밍도 하지 않고 그냥 해외를 나가서, 스마트워크 시대에 우리를 옭아매는 ‘상시 연결’의 굴레에서 벗어나 ‘통신단절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었다. 물론 해외만 나가면 메신저도 메일도 가끔 와이파이 되는 데서만 본 덕분에, 한국에서는 꽤 답답하게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시대가 변해서, 최근의 ‘알리바바 컴퓨팅 컨퍼런스’ 참가를 준비하고, 실제로 참가하는 데 있어서는 통신 단절이라는 상황이 기쁨보다는 생존의 위협으로 느껴지는 상황으로 다가왔다. 연락이나 지도, 정보 확인 등은 물론이고, 당장 편의점과 자판기에서 음료 하나 사 먹고 싶을 때도 ‘데이터 잘 터지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 고도로 디지털화된 사회는 외부인에게 있어 참으로 높은 장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해외 로밍 같이 데이터 트래픽에 제약이라도 있고 하면,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희생되는 누군가는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겠다.

 
▲ 누군가에게는 ‘신세계’ 지만, 최소한 우리의 일상에서 이 정도로는 조금 미적지근한 느낌이다

알리바바가 이야기하는 ‘신유통’, ‘뉴 리테일’은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왜 이게 새로운 것인지 약간은 의아한 느낌도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도 모바일 쇼핑에 익숙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보고 스마트폰으로 가격비교한 뒤 주문하는 것이 크게 낮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바일 지불’도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하고 있고, 사실 기존의 카드 결제 시스템도 ‘긁히는 바코드’로 디지털화된 시스템이다. 여기에 국내 기업들은 ERP, SCM 등의 시스템도 이미 잘 구축하고 있다. 굳이 알리바바의 모델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놀라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알리바바가 제시하는 시스템이 현지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점이라면, 현재 중국의 ‘디지털화’는 기존 시스템을 개량하는 점진적인 변화가 아닌,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수준의 대변혁이라는 점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뉴 리테일’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꼽자면 ‘단계별 변화’를 꽤 중요시한다는 점인데, 일단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곳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이를 연결해 전체 시스템을 전환한다는 점은, 여러 모로 큰 폭의 변화를 기업과 고객 모두 충격을 줄이면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사실 이 ‘리테일’에서 중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지불 방법’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이미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이 거의 완벽히 보급되어 있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이 기존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야 되는 입장이었다면, 중국은 그렇지 않다. 덕분에 새로운 모바일 결제 시스템에 기존 신용카드 시스템이 편입되는 형태가 되었고, QR 코드 이미지를 기반으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사용자의 모바일 디바이스로 표시하는 QR 이미지의 장점은, 시스템 구조의 변경이 즉각적으로 엔드포인트까지 간다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신용카드는 카드를 바꾸어야 하지만, 앱과 QR 코드 기반은 이미지를 바꾸면 된다.

 
▲ 스마트폰과 인터넷 연결, 알리페이 계정이 없으면 자판기도 못 쓰는 곳이 이곳이었다

모바일 앱과 바코드, QR 코드 등을 통한 결제 방식은 이미 한국에서도 여러 기업들이 자체 결제 방식으로 쓰고 있지만, 한국에서 디지털 경제의 중심은 전용망 기반에서의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일 것이다. 그리고 사용자는 카드 한 장을 통해 이 시스템에 접근하게 된다. 카드 발급에는 돈이 들지만, 기본적으로는 카드사들이 시스템을 꾸려 가는 형태고, 사용자에게 카드 한 장을 준비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준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시스템에서도 결제 실패의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그런 상황 변수는 꽤 제한적이라고 봐야 될 것이다.

하지만 모바일과 앱 기반의 디지털 결제 방식은 사용자에게 페이를 위한 수단으로 모바일과 디지털 금융 정보의 연결, 그리고 데이터 연결을 요구한다. 그리고 결제를 위한 QR코드를 불러 오려면 그때그때 앱을 켜고 몇 번의 터치를 거쳐야 한다. 이 때 스마트폰의 데이터 통신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전용선과 달리 개인 스마트폰의 데이터 통신은 그 보장 수준이 없다 할 정도로 낮다. 어찌 보면, 현재 중국에서 볼 수 있었던 스마트폰 기반의 결제 시스템은, 이런 인프라 부분을 상당 부분 개인의 지불에 떠넘겨 버린 모습이다.

물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야 이 정도는 편의와 맞바꿔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이다. 나 자신도 국내에서는 그렇게, 어차피 쓰는 스마트폰과 데이터라 생각하고 이 정도의 지출은 그냥 받아들였다. 하지만 출장을 온 상황처럼 이렇게 ‘네이티브’가 아닌 입장에 서면 이 상황은 꽤 곤란한 처지를 만들게 된다. 특히, 행사장에 있던 자판기는 현금과 카드 모두 받지 않고, QR코드만으로 결제가 되는 시스템이었던 덕분에, 알리페이 사용을 위해 수고하기보다는 그냥 목마름을 참기로 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출장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서도,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결제란 생각보다 번거로운 존재다. 개인적 취향으로 저가형 자급제 스마트폰에 아직도 3G를 쓰는 상황에서, 지불과 통신사 할인, 포인트 적립을 위해 두세 개의 앱을 띄우고 전환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오래 걸리고, 심지어는 데이터 연결 상태 불량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나온다. 덕분에 언제나 비장의 백업으로 물리적 카드 한두장은 지갑에 넣고 다니는데, 이래서야 모바일 결제를 굳이 쓸 이유도 없어진다. 어디선가 들었던 팁으로는, 바코드와 QR코드를 캡쳐해서 이미지로 두면 편하다고 하는데, 프린트해서 카드에 붙여서 쓰면 그것도 나름 쏠쏠하지만, 이미 본질을 벗어난 느낌이다.

 
▲ ‘디지털 사회’에서, 인터넷 연결과 모바일 단말은 이제 생존권 문제로 다루어야 할 지도 모른다

클라우드와 모바일로 이어지는 ‘디지털 사회’로의 변화가 진행될수록, 이 변화에 익숙하지 않거나 외부에 있던 사람들의 소외 문제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데이터 잘 터지는 비교적 최신 모델의 스마트폰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외부인이나 소외자 뿐 아니라 스마트폰의 고장이나 분실 등의 돌발 상황에서도 꽤나 아찔한 경험을 하게 한다. 또한 디지털 문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 디지털 문명을 ‘편의’라는 이유로 강요하는 것은,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아주 조심해야 할 흔한 실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사회로의 빠른 변화에서는 누구나 순식간에 소외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사실 나 자신조차도, 몇 년 전만 해도 언제나 변화에 빠르게 따라갈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음을 느낄 정도다. 이는 당장 IT 기술이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데 중요하지만, 막상 나 자신에게는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 이상으로 당장 먹고 사는 현실 생활이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한된 시간에 어느 쪽을 잡고, 어느 쪽을 타협해 가느냐의 문제이기도 한데, 기술이 이 부분에서 너무 자신들의 관점만을 고집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에, PC와 스마트폰, 데이터 연결은 이제 선택의 대상이 아닌 생존의 ‘필수 품목’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이란 건, 전체 흐름에서 더 많은 부분을 사용자에게 넘기는 모습도 보인다. 이에 ‘더 편리해졌다’는 모바일 시대가 누군가에게는 ‘더 귀찮아졌다’는 평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디지털 시대를 사는 데 있어,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소외됨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소외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소외와 희생이 나타나는 경우를 좀 더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디지털 시대로의 더 자연스러운 전환에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화’에 필요한 개인의 지출도 각 개인에게 강제하기보다는 선택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최근 상시연결 스마트워크 시대의 문제가 되는 업무시간 외 메신저 등도, 근본적으로는 개인 용도로 사용하고 지출하는 단말과 서비스를 업무용으로 편입하게 강제되는 현실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당장 이것이 싫어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선택도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빈축과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관점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시키면, 지금은 개인이 지출하는 스마트폰과 데이터 비용에 대한 부분도, 사회 보편적 인프라와 기본 생존권의 영역에서도 봐야 할 것이 앞으로의 모바일, 디지털화된 사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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