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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창작물에서 거슬러 올라가 본 창작가의 잔상

기사입력 : 2022년 09월 18일 21시 22분
ACROFAN=류재용 | jaeyong.ryu@acrofan.com SNS
 
지난 9월 3일부터 초연이 시작된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과수원뮤지컬컴퍼니에서 제작해 유니플렉스 1관에서 막을 올린 창작뮤지컬이다. 인터미션 없이 약 120분 간 펼쳐지는 공연을 9월 18일 오후 2시 타임으로 보고 난 뒤에, 뮤지컬 외적이든 내적이든 꽤나 연상되는 바가 많이 남는, 오랜만에 잔상이 은은한 창작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 외적으로, 교양 차원에서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라는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위키백과에 올라온 바들을 알고 있다면... 보는 와중에도 내적 갈등까진 아니더라도 당혹스러운 그런 포인트들이 몇 있다. 극 전체적으로 상당히 소프트하게 각색되었다지만 차이코프스키 당사자의 성적 취향은 일평생 여러 일화들과 설들이 쏟아져 나왔을 나올 정도로 명확하다. 게다가 무려 제정 러시아 그 시절에, 그야말로 상남자 알파메일 타입이었던, 남들 눈치 때문에 혼인신고 유지는 해준다는 식으로 살다 갔던 그이기에 더 신경쇠약 말기에 이르는 극 중 그의 모습은 실제 역사와 부딪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극의 도입에 장치로 쓰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극의 마무리를 맡은 푸시킨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구성을 일종의 ‘액자’로 본다면 다소 다른 측면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이는 넘버의 속성을 되짚어 볼 때 더 명확해 진다. 그 어느 극보다 더 ‘독백’으로서의 넘버가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 푸시킨의 작품 내용과 뮤지컬이 이어지는 걸 주도한다. 일반적인 접근으로 캐릭터와 그 서사에서 극을 구상했다기 보다, 작품에서 작품을 지은 이를 상상으로 복기해본다는 흐름이 더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주요 캐릭터 넷에 맞춰 이야기의 흐름이 초반에 각자 따로 간다. 차이코프스키를 중심으로, ‘알료샤’ 동성 러브라인, ‘안나’ 이성 간 플라토닉 러브, ‘세자르’ 동업자 정신(!) 등 이 셋이 각 씬으로서 교차되면서 빠르게 넘어간다. 문제는 이 스피드함이 어느 정도라면, 뮤지컬 넘버 끝나고 박수 칠 타이밍도 드물게 만든다거나 개별적인 서사를 극 다 보고 따로 생각해 봐야 할 정도로 아주 촘촘히 밀고 가는 게 있다. 120분 안에 결말까지 내자니 촉박한 건 알겠는데, 이건 차이코프스키의 유명 작품 제작 서사를 두 셋 이내로 재편한다면 운용 측면에서 숨통이 트일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던 중, ‘가수 인생이 노래 따라 간다’는 말이 불연듯 떠올랐다. 아마도 이의 역발상으로 고안된 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하반부와 마지막 마무리를 이루는 <예브게니 오네긴>의 서사와 이게 투영된 캐릭터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창작물을 바탕으로 이의 창작자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올린 극이 아닌가 그리 연상된다. 그리 보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생각나는 이름은 <상드, 프레데리크 쇼팽>이었다. 이런 생각이 다 들게도, 흘러가는 이야기가 제정 러시아의 슈퍼스타 음악가보다는 제정 러시아 침공으로 망명 떠났던 무슨무슨 란드 예술가가 더 적합한 궁상이 나타나는 걸 보면, 캐릭터 성향이 실존인물의 전기적 극이라기 보다는 푸시킨 작품 속 이야기가 실존인물의 이름을 빌어 눈과 귀에 찰싹 달라붙는 듯 하다.

 
앞서 언급했던 바들처럼, 따지며 본다면 다면적 그리고 다층적으로 고안된 것을 세면서 보는 극이다. 그러나, 그런 걸 떠나서 보이는 그대로를 즐기는 게 적절한 그런 작품이라고 추천할 수 있겠다. 작품에서 작가를 추리하는 그런 접근법이기 때문에, 이게 상식인지 고집인지가 강하면 작품 밖으로 감상이 튀어 나간다. (특히나 요즘처럼 러시아가 전쟁 일으킨 시국에는, 극중 논해지는 대사 구절 중 ‘민족’ 대신 ‘국가’가 맞나, ‘국가’ 대신 ‘민족’이 맞나 하는데에 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다. 극중 그 시절 ‘흑황백’ 국기가 아니라, 현재에도 쓰이는 ‘백청적’ 국기가 휘날리는 것도 보고 있으면, 극에 반전 의도도 가미시킨 건가 싶어 더 심란해지겠고)

엄연한 창작극 초연인데, 이걸 괜히 진지해져서 고민하고 그러다... 알차게 짜여진 배우들의 텔렌트를 놓칠까봐 두렵다. 특별히 무대장치가 동원되는 게 아니어도, 네 명의 앙상블과 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로 무대를 꽉 채우는 게, 네 주요 캐릭터의 이야기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기에 더 그렇고. 여기에 넘버도 넘버지만, 특히 BGM 퀄리티는 소극장 무대에서는 듣기 드문 높은 수준을 들려준다. 배우와 스텝들 모두, 보는 내내 실수도 안 보일 정도로 팀워크가 빼어난 극 운영과 넘버 배열이기에, 더 극 자체를 “편견 없이” 집중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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