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사세구’에 준한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다. 때가 되어 으례 하는 업에서의 은퇴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앞뒀다는 걸 인지하며 쓴 그런 기미가 물씬 풍긴다. 애니메이션의 제목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도, 원작의 스토리대로 작품을 만들어서 이런 게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이 어렸을 적 어머니가 권한 책 이름이 이거라서 이리 되었다고 알려진 형편. 주인공인 마키 마히토 역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선물받은 책 제목이 바로 이 책이고. 보고 눈물 흘리는 것 역시 꼭 애니메이션만의 장치가 아닌 감독 자신의 투영이 짙다.
반 팔십, 반 백... 그리 나이 들면 젊었을 때는 못해보는 경험이란 걸 슬슬 하게 된다. 주변 어르신이나 형님들 세상 뜰 날이 가까워질 때, 술자리든 병석에서든 어렸을 적 어머니 이야기를 새삼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도 그런 류. 그래서 본작은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각본부터 감독까지 모두 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스스로 많은 사람들의 손을 빌려 마음껏 만들 수 있을 때 그러한 자신만의 자전적 이야기요 사세구라는 느낌이 그래서 참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며 만나는 수 많은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헤어짐과 만남은 가장 작게 자신의 가족만으로도 가장 절실하게 겪게 되는 일들이다. 그리고 우에서 좌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책들 속 글자의 배열은 이게 얼마나 옛 이야기인지를 명확히 상기시킨다. 애당초 트렌디하게 팔릴 작품이라기 보다는, 스스로를 옛날의 옛날 사람으로서 특정하고 시작부터 작정한 때문인 것 같다. 이러면, 마케팅이니 홍보니 할 필요 없기도 하니... 일본 개봉 때 왜 그리 신비주의 흉내였는지 알만하다.
그리고 묘하게 상징성을 비튼 것도 인상적이다. 대표적으로 화장실 옆 펠리컨 씬. 대개 새는 죽음을 상징한다고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보다는 누구나 품고 있는 욕망의 편린에 가깝다. 욕망의 말로 중 하나가 죽음인 것이지, 욕망 그 자체가 선악으로 딱 나뉘지 않는달까. 잉꼬대왕이 감독이 살며 다소 싫었던 남의 크디큰 목소리들을 상징하는 거 같으나, 그 역시 지나고 보면 한낱 부질 없는 것이었다는 회한 마저 서려 있다. 완장 떼면 갈 날 받아 놓은 기생물에 지나지 않음은 새삼 더 그런 회한을 더해준달까. 새들은 그저 그대로가, 마음이 생각이 하나에 꽂힌 한 가지 루트 정도로 보인다. 뭐에 미쳐 단방향인 삶이면서도 얄밉게도 사실은 서로서로 돕고 걱정하는 그런 관계. 마음 속 수 많은 요소 요소들이 마치 거울처럼 감독 그 자신과 겹쳐져 표현된다. 그 스스로가 가장 싫었을 왜가리 같은 본성이, 사실은 어찌 가까운 듯 아니면 먼 듯 스스로를 지켜준 방어기제였을지도. 이러한 이야기 풀이 방식은 마지막 히미의 선택과도 이어진다. 이미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지만, 그건 그대로의 길을 따름이 그 자체로도 보람 있는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스스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참으로 우리네 어머니 모습 그대로다. 아마도, 감독 그 스스로가 이미 기억조차 희미해질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 작품을 봉헌하고자 하는 느낌까지 든다.
개봉 이후에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이 더 정렬적으로 새로운 작품 준비에 매진한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그 스스로도 마음껏 이 작품을 만들고 보니 무언가 다른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이번 생애에 이렇게 해냈다고 자부하면서도, 내세에 원점부터의 새로운 시작으로 기대하기에는 지금 이 때 스스로가 해낼 수 있는 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달은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정말, 우리들 산 사람들 마음보다는 하늘이 그의 작품을 하나 더 하나 더 보고 싶어하는가가 관건인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참으로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취를 살며 이뤘고, 그 자리에서 떠나갈 마음의 준비를 이리 대작으로 해낼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손을 한없이 빌릴 위치까지 점하고 있다. 이런 성공한 삶이 스스로 마무리까지 준비하는 걸 보며, ‘어찌 살아야 할까’라는 새삼 그러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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